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.(눅 23:34)
어릴 때 중국 무술 영화를 참 좋아했습니다. 어떤 영화든 내용은 대체로 비슷합니다. 영화가 시작하면 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이 나옵니다. 이 사람 곁에는 아들이 있습니다. 그는 울고 있는 아들에게 “원수를 갚아달라”고 말합니다. 아이는 입산수도해 무술을 연마한 뒤 하산해 한 사람씩 원수를 갚습니다.한데 마지막 원수가 죽을 때 맨 앞 장면과 똑같은 일이 펼쳐집니다. 그 원수는 곁에서 울고 있는 어린 아들에게 말합니다. “원수를 갚아다오.” 보복의 고리가 돌고 돕니다. 한의 고리를 끊는 것이 곧 ‘단(斷)’입니다. 이 고리를 끊지 않으면 결국 너도 죽고 나도 죽습니다.주님의 십자가는 보복의 고리를 끊어버린 ‘단의 사건’이었습니다.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자의 죄와 허물을 용서함으로써 한의 고리를 끊었습니다. 주님이 중국 무술 영화 주인공처럼 마지막 순간에 “원수를 갚아다오”라고 말했다면 기독교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요. 용서해야 모두가 살 수 있습니다. 오늘 나는 주님이 걸어간 그 길을 걷고 있습니까.
오늘의 말씀에서 생각해 보는 신앙의 질문
질문 1: 지금도 당신의 마음속에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나 사건이 있습니까?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"아버지,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"라고 기도하셨음을 기억하면서, 오늘 그 사람을 위해 한마디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?
질문 2: 보복과 한의 고리를 끊는 것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. 오늘 당신은 주님의 용서의 능력에 의지하며, 그 첫 걸음을 내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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出典:国民日報 “https://www.kmib.co.kr”



